얼마 전 방송 프로그램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김득구 선수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졌다.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온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비슷한 또래 아이들에게 책을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던 그는 우연히 세계적인 무대에서 타이틀전을 치르고 있는 우리나라 복서의 모습을 생중계로 만나게 된다. 세계적인 스타가 되면 국위 선양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가난한 김득구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했던 동아체육관에 다니면서 관장과 코치의 눈에 들에 되었다. 그는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챔피언, 동양챔피언으로 승승장구했고, 마침내 세계챔피언과의 결전만이 남아있었다. WBA 라이트급 챔피언인 레이 '붐붐' 맨시니와 미국 네바다주 라이베이거스에서 15라운드로 이뤄지는 경기였다. 김득구는 스스로 만든 관을 가져올 정도로 무대에서 죽을 각오로 임하겠다는 뜻을 보여주었다.
방송에서는 미처 다루지 않았던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레이 맨시니와 김득구의 대진에 관한 것이다. 당시 김득구의 상대였던 레이 맨시니는 잘 생긴 외모로 미국에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패배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프로모터 밥 애럼은 상대적으로 만만한 상대와 대진을 기획했다고 하는데, 바로 김득구 선수가 그 희생양이 된 것 같다는 시각이었다.
여하튼 당시로서는 김득구가 당연히 세계 챔피언과의 기량 면에서 열세했다. 이런 부분을 알았기에 김득구는 더욱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경기날이 되었다. 14 라운드까지 잘 버티던 김득구는 레이 맨시니의 치명적인 라이트를 맞고 쓰러졌다. 이미 더 이상 경기를 이어 나갈 상황이 아니었지만 김득구는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심판은 KO 판정을 내렸다. 그렇게 어렵게 일어났던 김득구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시 쓰러졌다. 결국 병원에 이송된 김득구는 뇌에 피가 들어차서 수술을 급하게 해야겠고, 며칠 뒤 의료진은 뇌사판정을 내린다. 당시로서는 미국에서 뇌사는 죽음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한국에 있던 김득구의 어머니는 비행기를 타고 아들을 만나러 왔고, 결국 어머니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나이 불과 24세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김득구의 어머니도 스스로 아들 곁으로 갔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동안 정신이 멍해졌다. 지금 24살이면 여전히 대학생 정도의 어린 나이인데, 저렇게 불꽃같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숙연함이 들었다. 새해의 결심도 며칠만 지나면 흐지부지되고 게을러지는 것이 사람인데, 어린 나이에도 강한 의지를 가질 수 있게끔 그를 움직인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그는 결혼을 하여 자녀를 둔 상태였고, 시골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이면서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있었다. 가족을 지키려는 그 마음이 그가 쓰러질 수 없도록 만든 힘이 아니었을 까 싶다.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멋진 인생을 살았던 김득구 선수를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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