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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세이

직원을 너무 닥달하지 마세요. "무능한 직원의 탄생과 필패 신드롬에 관하여 "

by 콩장수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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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직원의 탄생과 필패 신드롬에 관하여

 
이건 오래 전의 일이다. 출근하자마자 새로 부임한 우리 부서의 장은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어 모았다. 보통 아침은 업무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바쁘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들 늬엇늬엇 걸어왔다. 편의상 부서장을 J라고 부르겠다.
 
J는 준비해온 노트를 펼치더니, 화이트보드에 수성 매직으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20:80이라고 적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지만, 정적이 흘렀다.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또 한바탕 설교를 해댈 것임에 뻔했다. 마크 트웨인도 사형수에게 20분 이상 설교를 하면 구원받기를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나. 여하튼 빠르게 요약하자면, 20:80은 파레토의 법칙으로 일컬어지는데, 희한하게도 자연현상이든 인간사회의 모습이든 20:80으로 기가 막히게 나눠진다는 것이다. 조직에서도 유능한 직원이 생산성의 80%을 담당하고, 20% 정도의 무임승차하는 무능한 직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똑똑한 직원들만 모아두어도 20%의 직원은 무능해진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링겔만 효과인지 뭔지를 부연 설명하며 사람이 늘어날수록 생산성이 줄어드는 무임승차를 하며 공헌하지 않는 일부의 일 안 하는 직원들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 자신이 부임해 온 이 지점을 보니 직원들에게서 그런 문제점이 보이니, 자발적인 개선은 어렵다고 판단되니, 자신이 관리감독을 더 철저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선언한 이후부터 담당자는 자신의 주요 업무까지도 후순위로 제쳐놓고 J가 원하는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엑셀과 매일 저녁 씨름을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직원들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길게 늘어졌다. 다들 J를 욕하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파레토 법칙이란 게 인간 사회에서도 결과적으로 비슷하게 적용이 되더라도, 내가 속한 조직의 모습도 실제로 그러한가? 만약 그렇다고 해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뭣하러 이런 개고생을 하는 걸까? 그럼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 가정과 숨겨진 뜻을 따져보았다. 아마도 J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을 했을 듯하다. 
 


이 부서는 성적이 참 좋지 않군. 아마 원인은 직원들에게 있을 거야. 난 직원들을 믿지 못하겠어.  성과를 끌어내기 위해서 좀 더 강압적으로 할 필요가 있어. 이런 조직에서는 직원을 좀 괴롭히더라도 성과를 내는 게 우선이니 말이야. 직원에게 계속해서 보고서를 내게 만들면, 직원들도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해서 더 깊이 들여다볼 것이고, 나는 앉아서 직원을 통제할 수 있는 셈이니 효과적일 거야. 
 
일하지 않고 성과도 못 내는 하위집단에 들어가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니, 일 안 하는 직원도 자극을 받고 열심히 일할 거야. 특히 나에겐 인사고과란 무기가 있으니 말이야.


 
그렇지만 반론을 제기하자면, 내가 속해 있는 지점의 성과에 원인이 되는 변수가 직원들의 능력 또는 태도의 문제로만 바라볼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성과라는 결과변수에 대한 원인 변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을 수가 있으며, 결괏값을 변형시키는 매개변수도 존재할 수 있다. J가 늘 엑셀로 보고서만 만들다 보니, 무엇이든지 단순하게 범주화시키고 프레임을 씌우는 버릇 때문이거니 했다. 그렇게 결론 내린 직원의 문제를 요즘에는 잘 먹히지도 않는 독재자형 리더십으로 관리하려는 생각 자체가 이미 J의 사고는 전근대에 머무르고 있었다. 일례로 J는 미꾸라지를 싱싱하게 보관 및 운반하기 위해서는 메기를 넣으면 된다고 했다. 즉, 공포는 조직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무기라고 믿었던 셈이다. 그건 아는가? 미꾸라지가 살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다 보면 운동량이 많아져 팔팔하긴 하겠지만, 실제로 번식률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결국 미꾸라지의 세계에서도 그건 지속 가능한 경영은 아닌 셈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만약 미꾸라지면 산채로 뜨거운 솥에 들어가 삶기느니 죽음을 택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메기을 넣었을 때, 미꾸라지의 선택지는 2개뿐이다. 1. 메기 공격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산채로 솥에 들어간다. 2. 메기에게 잡아먹힌다. 오히려 메기가 들어옴으로써 미꾸라지는 편히 죽는 권리를 박탈당한 셈이다. 앞으로 보나 뒤 로보나 미꾸라지에겐 비극적인 결과만 남아있는 셈이고, 미꾸라지를 직원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잔인하기까지 하다.)
 
뭐든지 그룹핑해 버리는 범주적 사고는 업무에 있어서는 효율적인지는 모르나, 우리가 사는 인간 사회에서는 위험하다. 스테레오 타입과 편견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한번 무능한 직원으로 낙인찍어버리면 그 직원은 정말로 무능한 직원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 단계는 이러하다. 직원의 실수를 발견한 상사는 호되게 혼내면서 자존심과 의욕을 떨어뜨리고, 이 직원은 특별관리의 대상이 된다. 혹시 다시 사고 칠까 봐 믿음이 가지 않는 이 직원에게 허구한 날 보고서를 내라고 닦달을 한다. 직원은 내가 뭣하는 노릇인가, 보고서 쓰느라 다른 일을 못하네,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신세를 한탄한다. 성과는 더 나빠지며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가만 보면, 바로 J가 직원들을 불러 모아 두고 말 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 직원을 무능하게 만드는 완벽한 절차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학문적으로 입증한 인물이 바로 리더십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장 프랑수아 만조니와 장 루이 바르수이다.
 
이것을 필패 신드롬(set up to fail syndrome)이라고 하는 데, 이는 한번 낙인찍힌 부하는 낮은 기대치에 맞는 성과를 내게끔 유도되면서 결국 개인도 조직도 실패할 수 없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는 원리이다. 이런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상사의 확증 편향 탓이다. 확증 편향에는 자기실현적 예언 현상이 나타난다. 요컨대 상사가 직원을 무능한 직원으로 낙인찍으면 실제로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결국 직원에 대한 믿음과 지지가 필요한 것이다. 실수를 반복하는 직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더 잘할 수 있게 이끌어주고 지지해 주어야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믿어준다면 직원은 크게 감동을 하여 더 잘해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고 그 믿음에 호응하며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성과도 좋아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편리함을 원하는 인간의 뇌는 범주화를 선호하지만, 자칫 편견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조직 자체도 망가뜨릴 수 있다. 바로 진정한 해악은 무능한 직원이라고 규정해 버린 상사의 잘못된 리더십일 수 있는 것이다. J가 가진 스테레오 타입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J도 결국 하부 조직을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 그도 영락없는 직원일 뿐이다. 같은 직급의 동질 집단에서는 그에게도 20:80의 파레토 법칙이 적용될 터이고, 엑셀로 직원들을 관리하려는 그의 태도는 우리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바라본다면, 그도 그럴 듯이 하위 20%의 무능한 부류에 속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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