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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세이

'너'라는 의미

by 콩장수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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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익숙하지만 죽음은 낯설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삶에는 언제나 죽음이 따라다닌다. 누구도 스스로의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되면 표현하기 힘든 고통을 느낀다. 그때 비로소 죽음을 깊게 생각하게  된다.

 

없다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만날 수 없다는 것.

 

한때 영원할 것 같았던 빛나는 삶은 밀려든 파도가 바위를 만나 찬란한 햇빛을 품으며 허공 속으로 부서지듯  준비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TV 리모컨을 돌리던 중, 한 채널에서 멈췄다. 그리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MBC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VR 기술로 세상을 떠난 이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내고, 거기에 실제 목소리를 입히고, 실제로 존재하는 추억의 장소를 가상현실로 배경으로 삼아 의뢰인이 사별한 이를 가상공간 속에서 만난다는 내용이다. 슬펐다. 무척.

 

인공지능이니, 가상현실이니 귀 따갑게 들려오는 오늘날,  VR기술이 이젠 죽은 사람까지도 엇비슷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어차피 진짜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뻔히 가짜인 줄 알고 있는 이 픽셀 덩어리는 어째서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빼앗아 가는 것일까?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가 난파된 비행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무인도에서 홀로 지낼 때, 말동무가 없어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걸어주면 친구가 되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가슴 아팠던 장면이 더러 나온다. 톰 행크스가 구조되어 연인과 재회하지만 그녀는 이미 결혼하여 남편이 있다는 알게 되는 먹먹한 장면도 나오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대목은 무인도를 탈출하기 위해 뗏목을 타고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배구공, 아니 친구 윌슨을 잃는 장면이다. 배에서 점점 멀어지며 떠내려가는 배구공을 보면서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구하려고 애썼지만 결국은 그것, 아니 그를 떠나보낸다. 배구공 따위에 이처럼 큰 슬픔을 느끼다니.

 

의미를 부여하는 것. 누군가 혹은 무언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을 때, 심장에서 풀려나온 끈으로 서로 이어진다. 그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되고, 그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 된다.  어린 왕자가에게 백만송이의 장미를 선물해도 그가 떠나온 행성 B612에 홀로 있는 장미를 대신할 수 없다. 나의 가족, 친구, 반려동물, 오래된 로봇청소기,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산 중고자동차...  의미를 부여하는 이 특별한 능력은 대가를 치루게 하면서도, 동시에 살아갈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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