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무척이나 닮은 그를 만나다
예술가를 떠올린다면, 누군가는 담배를 꺼내 물고 고뇌에 가득 찬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내게도 자고로 예술가라면 강한 아우라를 내뿜고 보통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힘든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예술가가 그러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편견을 사라지게 한 어느 예술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예술가는 집안이 가난하여 십 대 때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하여 센느강의 상산의 통행료를 받는 반복적인 일을 시작으로 쳇바퀴 같은 직장생활을 무려 30년 동안 하며 젊음을 갖다 바쳤다. 그는 회사 생활만 열심히 하느라 정작 좋아하는 미술공부를 할 틈이 없었고, 출근을 안 하는 휴일에만 틈틈이 그리다 보니 그는 그저 그런 아마추어 작가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의 작품은 시장성도 없었고, 미술계에서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 그에게 재능이 있는 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는 쉰 살에 은퇴하면서 비로소 꿈에 그리던 전업작가가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그림을 시간 구애를 받지 않고 그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전업작가가 된 이후에 그에 대한 평가도 그다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예술계에선 그가 여전히 삼류, 아마추어 화가였다. 사람들의 조롱에 상처 받을 법한데, 그는 스스로를 위대한 화가로 자처하며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앙리 루소이다
회사 생활을 반평생 한 예술가라. 애잔한 생각이 들어 왠지 그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이질적으로 느꼈던 예술가가 나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았다는 부분에서 한 층 더 가깝게 느껴졌다.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았더라면, 좀 더 일찍 전업작가로 뛰어들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한편으론 지금의 청춘들에겐 오히려 그의 철밥통과 연금이 부러울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듯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침마다 힘겹게 눈을 뜨고 직장을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지겨운 일상에서, 업무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마치 전장에 나갔다가 온 패잔병처럼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했을 테니 말이다. 별반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 꿈을 꾸지만 재능이 없고, 재능이 있다 한 들 현실을 바라봐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 인생. 늘 새로운 것을 꿈꾸고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길 바라면서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며 적응해버리는 삶.
평범한 인간의 장대한 꿈, 그 지질한 모습에 앙리 루소가 인간미 물씬 풍기는 편안한 동네형처럼 느껴져 그를 응원하게 한다. 그러기에 그의 성공과 명성이 더욱 뿌듯하게 느껴진다. 프랑스 땅이 아닌 먼 이국에서 아주 평범한 한 남자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면, 꽤나 성공한 인생이 아니었겠는가.
예술은 낯섦을 좋아한다. 이질적인 것을 함께 배치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어떤 사물을 배치하는 것처럼, 예술은 끊임없이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움과 낯섦을 찾아 헤맨다.
당대 이른바 잘 나간다는 화가들은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서 낯선 외국으로 장거리 여행을 가곤 했다. (폴 고갱은 타이티 섬으로 여행을 가서 장기간 머물렸다.) 이에 자극을 받은 루소의 그림에서도 밀림과 이국적인 동물을 묘사했다. 그런데 동물이 뭔가 이상하게 생겼다. 사실 그는 한 번도 본토 밖의 땅을 밟아본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동물을 상상으로 그린 것이다. 외국으로 못 나가본 것이 콤플렉스인지 외국에 나가봤다고 거짓말까지 해댄다. 파리에 있는 동물원이나 식물원,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했다고 하니, 따지고 보면 책으로 배운 셈이다.
그의 이런 상상 덕분에 그림에 나타난 묘한 낯섦을 만들어냈다. 당시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희한한 그림이었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 마치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상상 친구 빙봉이 사라지지 않고 그의 곁에 머무르는 듯, 그의 작품에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따스함이 담겨 있다. 그가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것들에 상상을 더해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결국 지극히 평범한 삶에서도 그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진정성이 당대 화가들이 시도하지 못한 독창성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본 당대 주류 미술계에서는 자칭 화가라는 자가 그린 근본 없는 그림으로 비웃을 뿐이었다.
미겔 데 세르반데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이달고 돈키호테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과대망상을 가진 편력 기사로 등장한다. 현실감각이 부족하고,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사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사실 그의 신념은 진심이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나는 그를 걱정하여 고향으로 다시 데려오지만, 돈키호테는 그가 추구한 편력 기사가 허구란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몸이 쇠약해지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누군가의 신념을 가볍게 대하는 태도는 누군가의 삶을 희망을 송두리째 뽑아 버릴 수 있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기도 한다. 허무맹랑한 계획을 말하면 마치 본인이 다 안다는 마냥 상대를 낮잡아보는 태도로 조언을 해댄다. 이것은 언어의 폭력이며,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상대의 가슴에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앙리 루소들이 꿈을 잃었다. 더러는 현실을 힘없이 받아들이고 순응했다. 이것을 ‘철이 든다’던지, ‘성숙’이라고 받아들였다. 자신을 향한 멸시를 참아내고 스스로를 지켜내 결국은 오늘날 재평가된 앙리 루소가 참 자랑스럽다.
앙리 루소는 예술의 영역에 나 같은 무지렁이도 발을 들여놓게 했다. 나는 사실 예술에 재능이 없고 그림을 보는 안목도 부족하다. 어떤 것 하나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에게 그가 보여준 삶의 자세는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지금에서야 앙리 루소는 예술계의 커다란 별이 되었지만, 당시 앙리 루소는 여전히 꿈을 좇는 우리의 모습일 테니. 그런 이유 때문일까, 그의 작품을 보면 유쾌하고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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