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다가가려고 했던 예술가
서른 살 무렵이었다. 불안하고 허기진 마음을 채우기 위해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다 마침내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렀다.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움직이며 시간은 거슬러 올라갔고 , 그 거대한 무대 위에 홀로 서있는 것 같은 흥분에 가슴이 뛰었다. 어느새 나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 서 있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도착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하느님, 부디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를 가진 ‘피에타’라는 작품이다. 피에타는 지친 내 음울한 영혼을 달래주는 듯했다. 이 작품을 만든 이는 바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로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의 한 명이다.
이 석상을 보며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더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 예술작품이 나를 압도하며 정신을 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신의 마음을 느끼지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은 따뜻하고 편안했다.
미켈란젤로가 어떠한 인물이었고,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그의 영혼은 너무나 맑고 투명했다. 뭔가 확신이 생겼다. 정말 이 사람은 신에게 다가가려고 했던 사람이었구나!
르네상스 시대의 비범한 천재 예술가가 많았지만, 미켈란젤로가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어쩌면 가장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랄까. 모든 분야에서 넘사벽 재능을 갖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잘 생긴 귀공자 같은 외모에 다정다감한 성격을 갖춘 라파엘로와 달리 미켈란젤로는 뛰어난 재능이 있긴 했지만 못생긴 얼굴에 성격이 다소 괴팍하고 고집이 있었다. 이런 모난 성격 덕분에 친구가 별로 없었던 사람이라고 하니, 오히려 이런 모습이 미켈란젤로를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편안한 사람으로 비치게 한다.
사실 미켈란젤로의 삶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반대하는 아버지와 싸우고 설득해야 했고, 자신의 재능이 비범하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교만하기도 했고, 돈을 달라고 보채기도 하고.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해 교황에게도 대들기도 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복수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평범하다 못해 못생긴 외모에, 회의적인 성격까지 가지고 있으니! 이런 미켈란젤로가 더욱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닥까지 드러내면서 감정에 너무나도 충실한 그 모습 때문일 것이다. 재미있게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감정을 숨기고, 사회적 관계를 고려해서 내 의견조차 피력하기를 꺼려하는 쫄보 같은 내 성격과 다르게 솔직하고 정직했다.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은 미켈과 안젤로가 합쳐진 이름이다. 미켈의 의미는 대천사인 미카엘이며, 안젤로는 천사를 의미이다. 이것을 합치면 천사 미카엘이 되니, 어쩌면 정말 미켈란젤로는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격 괴팍한 천사 정도. 얼핏 보기에 불완전한 미켈란젤로가 이토록 완벽하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신의 계획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인식을 하였든 그렇지 않든, 살아가면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과 여름철의 날씨처럼 변덕스러웠던 마음의 변화와 숨 죽이며 조용히 내뱉었던 한숨조차 신의 촘촘한 계획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괴팍했던 그에 대한 신의 계획은 많은 부분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면서 유모에게 맡겨졌다. 덕분에 석조 공이었던 유모의 남편을 만나 조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 아버지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는 착한 아들이었다면 공증업무를 하며 도장이나 찍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다행히 고집이 센 덕분에 결국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기를란다요 제자로 들어가지만 스승을 깔보며 박차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자신을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을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교황 율리오 2세가 싫은 소리를 하며 그에게 천장화를 맡기지 않았더라면 시스티나 성당에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의 그림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럴 수가! (넘나 억지인가?)
그의 삶의 궤적은 인간의 불완전함이 신의 완전함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그 불완전함이 없었다면 신을 찾는 일도,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돌을 깎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신이 인간을 자신의 모습대로 빗어 생명을 불어넣었던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신의 형상을 돌에 새기며 신의 마음을 스며들게 만들었다. 이것이 루도비코아리오스토가 그를 가리켜 '일 디비노(Il Divino)', 바로 성스러운 이라고 부른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내게 너무 완벽하다. 심지어 잘 생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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