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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세이

(시답잖은 나의 Brunch essay series) "우린 모두 시한부 인생"

by 콩장수 202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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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순간 '너를 만나 행복했다'라고

청소하던 중 책장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앨범을 찾았다.  책머리에는 먼지가 소복이 쌓여있었고, 물티슈로 조심스레 닦아냈다. 이 앨범은 이십 년 전부터 새로운 사진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 늘 그 자리에 화석처럼 꽂혀있었다. 호기심에 첫 장을 넘기자, 나는 마법처럼 과거의 어느 날로  자연스레 빨려 들어갔다. 앨범 속 사진은 화질이 흐릿했고 색깔마저 누렇게 변했지만,  기억의 심연 아래 조용히 묻혀있던 그날들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때의 풍경, 냄새, 주변의 소음, 생각까지도.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여러 감정이 올라왔다. 시간의 강을 따라 너무 멀리 떠나왔다는 생각과 함께 그 여정에서 멀미가 날 듯한 너울과 가파른 협곡을 만나 이리저리 부딪혔던  지난날의 기억이 교차했다. 사진 속 사람들은  다들 바짝 긴장해선지 무표정했고, 뻣뻣했고, 어색했다. 그땐 왜 다들 그렇게 감정에 서툴렀는지.  지금은 이 사진에 등장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행방을 모른다. 바쁘다는 이유로, 삶에서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자연스레 관계가 끊겼다. 어떤 분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내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이름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런데도 사진 속에서 변함없이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내 어머니이다.  촬영된 사진 아래에는 날짜가 표기되었는데, ‘90.08.12' 그 날의 사진 속에는 10살인 나와 나란히 서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어머니는 당시 유행했던 보글보글한 파마머리와 고무줄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마흔 살이었다. 그 옆 막둥이 10살 소년은 이제 마흔 살이 되어, 사진 속 같은 나이의 어머니를 본다. 기분이 묘하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을 그다지 존경하지 않았다. 크게 잘못한 일이 없었는데도 억울하게 맞은 적도 있고,  귀가 어두웠던 아버지와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공식적인 직업이 없었다.  매 학년초 담임선생님이 가정환경을 조사한다고  종이를 나눠주며 부모의 직업을 적어내라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부모님은 나에게 아버지 직업 ‘미장’ , 어머니 직업 ‘파출부’로 적으라 했다. 당시 이 단어의 의미를 몰랐고, 어린 내가 추측하기를 미장이란 미용에 관련된 일이라 생각했고 파출부란 경찰관을 연상시켜서 마음에 들었다. 사실 미장은 시멘트를 바르는 일이었고, 파출부는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고서 , 이듬해부터는 부모님의 직업을 무직으로 적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국민학교 6학년 방학 때, 지금도 전 국민이 기억하는 세계박람회인 '대전엑스포'가 열렸다. 난 못 갔다. 개학을 하고 담임 선생님이 그곳을 다녀온 친구들은 손을 들라고 했다. 모든 아이들이 손을 들었고, 나도 슬며시 함께 손을 들었다.  우리 집은 겨울이 되면 난방이 제대로 안되어 냉기로 가득 찼다.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찬물이 나오는 순간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다. 여름에는 언제 어디서 출몰할지 모르는 바퀴벌레 탓에 한밤에 거실 불을 켜기가 두려웠다. 거실 불을 켜면  시커먼 바퀴벌레가  어두운 구석을 찾아 기어들어갔다. 잠을 잘 때면 장롱 아래에서 삭삭거리는 소리가 무서워, 온몸에 이불을 칭칭 감싸고 잤다. 어느 날은 신발을 신었는데 발꿈치에 뭔가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신발을 벗어보니 바퀴벌레가 으깨져 있었다. 이날의 충격으로 나는 신발을 신을 때 그 안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때 내 어린 시절 꿈은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면서 집구석 탈출의 꿈을 이뤘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내 입지는 점점 커졌다. 반대로 부모는 노쇠했고 영향력은 점점 작아졌다. 지금은 부모님은 도리어  내게 기대면서, 내 의견을 전직으로 믿고 따르는 상황까지 왔다. 한편으로 나이가 들고 노쇠하는 부모를 보니 이젠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평생을 부모님과 티격태격 싸우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한 순간 효자노릇을 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고 어색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20년, 30년 시간이 흐른 뒤 앨범을 열게 되었을 때 , 그땐 어떤 사진으로 채워져 있을까?  그때쯤이면 나도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 부모님은 존재할까? '지금'은 그때의 '과거'가 되어있을 것이고, 오늘을 추억할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무서워졌다. 생각해보니 앨범 속에 있는 사람들은 관계가 끊어져 나도 모른 채 이별을 하기도 했고, 이 세상을 먼저 떠나면서 이별하기도 했다. 만약 내가 죽는 다면 남겨진 모든 사람들과 이별을 하는 것이니, 결국 우린 모두 이별해야 하는 운명이다.

 

삶이 영원할 것 같았지만,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짧았다. 엊그제 같았던 나의 스무 살은 이미 스무 해 전이었고, 지금 내 나이는 일생의 절반을 채웠다. 그러고 보니 그때 마흔의 어머니는 어느새 일흔이 되어 있었다.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게 했고, 소중한 이들이 늘 내 곁에 있으리라 착각하며 점점 소멸해가는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사실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 우린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이별을 맞닥뜨려야 한다

 

이별을 해야 하는 시한부 인생은 감정을 무겁게 만들지만, 이별을 마냥 슬퍼할 필요는 없다. 행복한 이별도 있을 수 있으니까. 행복한 이별을 맞이 하기 위해서는 내게 이별의 연습이 필요하다. 남아있는 시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웃음 짓게 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간다면, 언젠가 맞이할 이별의 순간에 행복한 미소로 화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는 효자가 되진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게 남은 시간이 의미 없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아끼지는 말자. 어쩌면 이것은 이별의 연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별의 순간, '너를 만나 행복했다'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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