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닮아 있는 반 고흐
그땐 마음 시리고 외로웠다. 처음으로 홀로 떠난 이스탄불의 이름 없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올려다본 밤하늘과 닮았다. 당시 밤하늘을 환하게 수놓는 별들은 지독한 열병을 앓고 있는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별빛은 아야 소피아를 비추었고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름다운 광경을 봐서 그런 건지, 내 마음이 타들어갈 듯 외로워서 그런 건지,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작품은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과의 사건이 발생한 이후, 아를을 떠나 생레미에 있는 요양원에서 지낼 때 만들어졌다. 고흐는 이 풍경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고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아직 36살 밖에 되지 않은 이 청년의 숨 막히는 외로움이 전해지는 듯하다. 밤하늘에 총총히 수 놓인 빛나는 별과 그의 머리 위에서 회전하는 밤공기, 그리고 모두가 잠든 도시에서 수직으로 높게 뻗어있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에 닿을 듯 서있다. 아름다운 밤하늘의 찬란한 별빛과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외로움이 충돌하며 혼돈한다. 나에게 고흐의 그림은 그렇게 다가왔다.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만나 색다른 감동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고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사실주의 화가인 밀레를 존경하여 큰 영향을 받았고, 들라크루아의 기법을 연구하고, 일본 미술에 관심을 보였으며 힘 있는 붓터치와 강렬한 색상이 특징인 그의 독자적인 기법은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로 미술계의 한 획을 그었다던가 무미건조하다. 또는 한 천재화가가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끝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고도 말이다. 이건 너무 극적이다.
내가 고흐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냥 우리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늦은 나이까지 방황을 했던 것도 그렇고. 사실 그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을 한 것은 이십 대 중후반의 늦은 나이였다. 그 전에는 화랑에서 일을 하고,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탄광촌에서 헌신적인 목회자로 일을 하기도 했지만, 마음의 병이 있었던 고흐는 자의나 타의에 의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삶 중간중간에 찾아왔던 사랑은 잠시 머물다가 떠나버리기도 했다. 오랜 방황과 실패의 경험, 이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소재이다.
홍역 같았던 젊은 날의 외로움도 감정이입을 돕는다. 예컨대, 화가로 되기로 결심을 하고 나서도 일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아를에서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지만 고갱과의 다툼으로 물거품이 되고, 그의 잦은 기행에 주민들은 이상하게 보았다. 아를에서의 이런저런 사건 이후 다음 해 생레미로 옮겨 요양원에 입소했다. 많이 믿고 의지했던 동생 테오도 가정이 생겼다. 이젠 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릴 당시의 상황이다.
영화 '투르먼 쇼'처럼 고흐의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일상을 낱낱이 몰래 훔쳐본 것 같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하게 느껴진다. 그가 겪은 외로움과 슬픔, 사랑과 기쁨의 감정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그렇게 나는 고흐를 어느덧 사랑하게 되었다.
몇 년 전 밀레 전시회에서 고흐의 작품 일부가 함께 전시되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네덜란드로 수입된 일본 차(茶) 상자 원형 모양의 뚜껑 위에 유화로 그린 그림이었다. 앞면에는 고흐의 작품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제품을 생산한 회사의 상표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고흐가 캔버스를 살 돈이 부족해서 차(茶) 상자를 대용했다는 것인데,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폐기 처리될 쓰레기에 불과한 차상자 따위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어줬구나 했다. 그게 마음 편했으니까.
고흐가 만약 이 시대에 살고 있다면 좀 더 행복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여전히 사회는 고흐에게 차가울 것이며, 나 또한 그러할지도 모른다. 사회에는 여전히 많은 고흐가 살고 있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불행한 것은 이들은 죽어서도 고흐처럼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흐의 죽음은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위안이 되는 모순을 경험한다.
'미술 작품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답잖은 나의 Brunch essay) "알고 보면 달리 보이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 " (0) | 2023.01.03 |
---|---|
(시답잖은 나의 Brunch essay) " 케테 콜비츠;이젠 너를 꼭 지키리 " (0) | 2023.01.02 |
(시답잖은 나의 Brunch essay) " 쿠르베 ; 화가와 혁명가 사이에서 " (0) | 2023.01.02 |
(시답잖은 나의 Brunch essay) " 클로드 모네 ; 지금 이 순간을 향한 애정 " (2) | 2023.01.02 |
(시답잖은 나의 Brunch essay) " '베아트리체 첸치'를 기억하며 " (0) | 2023.01.02 |
댓글